산행

지리산

영봉 2006. 9. 7. 19:27
 

지리산

새재-조개골-하봉-중봉-치밭목-새재 

 

  지난 주말에는 장마에다 호우경보까지 내려 직원산악회의 정기산행을 쉬게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비가와도 지리산을 찾기로 했다. 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유평 새재로 향했다. 짙게 깔린 새벽 안개 속으로 시원스레 달려 원지를 지나고 대원사 입구 매표소를 통과하여 6시 넘어 새재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이라 매표소엔 사람이 없어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안개 때문에 오늘 날씨는 맑은 날씨에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로 예측했는데 예상이 빗나가 새재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의를 꺼내 입고 곧장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코스는 하봉, 중봉을 올라 치밭목을 거쳐 되돌아오기로 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조개골 입구 계곡에서 수통에 물을 넣은 후 조개골로 오르느냐, 아니면 쑥밭재로 오르느냐, 어느 코스로 오를까 망설이다가 오늘같이 비오는 날엔 계곡이 없는 쑥밭재로 오르기로 했다. 등산로 초입부터 통행을 막아 출입을 통제해 인적이 드문 탓에 우거진 수풀이 등산로를 가려서, 헤집고 가지 않으면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많은 비가 내려 등산로가 물길로 변해 군데군데 패이고 토사가 떠내려가 길인지 계곡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계속되는 산죽밭을 지나칠 때엔 지난번 심마니능선을 오를 때 눈을 다친 적이 있어 조심스레 올랐다. 나뭇잎의 물을 옷에 적셔가며 좁은 등산길을 오르다보니, 빗물과 함께 등산화 안팎으로 흘러 쑥밭재에 올랐을 때는 서서히 양말이 젖기 시작했다. 발에 느끼는 촉감이 촉촉해지더니 리듬에 맞춰 신에서 질퍽질퍽 소리가 난다. 비는 쉬지 않고 계속 내린다. 이마에는 땀과 빗물이 뒤범벅이 되어 줄줄 흘러내린다.


  지리산 능선이 구름을 배경으로 한 폭의 산수화처럼  선명하게 나타난다. 더 잘 보이는 곳을 찾으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여 사방이 훤히 바라보이는 바위에 올랐다. 하얀 구름바다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녹색의 산봉우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하느님도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지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추어 주는 게 아닌가? 얼른 카메라를 꺼내 저 멀리 반야봉을 감싸고 있는 구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남풍이 살랑살랑 불어 지리산 주능선을 넘는 구름이 골짜기에 깔리기를 기다리는데 그 사이를 못 기다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몇 장의 사진을 찍어 다행이었다.


  다시 능선길을 오른다. 풀숲길을 지나면서 잎에 묻어있는 물방울에 얼굴의 땀을 씻으며 국골서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고 한 50분쯤 걸려 하봉에 올랐다. 하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중봉 바로 옆에 붙어있어 그 웅장함이 한층 돋보인다. 지리 주능선 사이 골짜기엔 구름이 한 시간 전보다 훨씬 많이 깔렸지만 시커먼 비구름으로 음산하게 느껴졌다. 잠시 쉬는 사이 이리저리 사방을 관망하고 몇 커트의 사진을 찍었다. 이상하게도 사진 찍는 순간에는 비가 멎어주어, 아닌게 아니라 예감이 좋았다. 괜찮은 사진이라도 하나쯤 건지려나?


  또다시 비가 내린다. 하봉을 오르는 수직 절벽을 로프를 잡고 간신히 내려선다. 손에 낀 하얀 면장갑이 새까맣게 더러워진다. 하봉을 떠난 지 30분경 헬기장을 지나고 곧 이어 천왕봉 1.7Km, 치밭목 1.8Km라 적혀있는 갈림길을 지난다. 비를 맞으며 30여분이 지난 10시 40분, 오늘의 목적지 중봉에 올랐다. 중봉에서 바위에 걸터앉아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우리들처럼 비를 맞고 대원사로 향하는 예그린산악회 일행을 만났다. 어젯밤 세석대피소에서 1박하고 천왕봉을 거쳐 하산한다고 했다. 12시 정각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한다.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그친다. 전기가 없는 대피소 안은 깜깜해 식사를 할 수가 없어, 대피소 앞에 있는 통나무 식탁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30분쯤 기다려 뒤늦게 도착한 두 사람과 함께 집에서 직접 가꾼 상추와 고추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여기에다 가져온 매실주 한 잔에 잠시나마 낙원에서의 행복을 맛보았다. 점심을 먹은 후 한 잔의 원두 커피향에 매료당해 잠시 피로를 잊는다.


  신발을 벗어 양말의 물을 짜서 신고는 1시 반에 대피소를 출발했다. 내려가는 길에 무제치기폭포를 무심코 지나쳐 되돌아 올라가 계곡에 있는 폭포로 향했다. 비가 많이 내린 탓에 계곡의 물이 불어 폭포는 3층으로 하얀 물보라를 만들며 힘차게 흘러내린다. 이 폭포를 몇 차례 보았지만 오늘같이 이렇게 많은 물이 흘러내리는 건 처음이다. 폭포위로 무지개가 걸리면 금상첨화이련만 오전 시간이 아니라서 무지개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가며 필름 한 통을 다 찍고 더 찍었다.


  반시간 가량 폭포를 즐긴 후 새재로 향했다. 대원사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신밭골 거의 내리막길을 계속 걸어 오후 3시 30분 새재에 도착했다. 오전 내내 빗속을 걸어 땀과 비에 젖었던 옷은 내려오는 동안 저절로 다 말랐다. 새재에서 차를 타고 유평에 도착하여 도토리묵과 파전에 동동주 서너 잔이 오늘 목적을 성취한 즐거움에 흠뻑 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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