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수명 47세, 영조대왕 83세...비결은 왕성한 신장의 정기
평생 3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우리나라의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왕은 고구려 ‘장수왕’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이름 그대로 정말로 장수하였으니 무려 97년을 살았습니다. 장수왕은 지금의 만주지방 대부분을 차지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가졌던 임금인데,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이었으니 요즘으로 보면 적어도 120세 정도에 해당되지요. 장수왕 다음으로 오래 살았던 임금은 조선의 영조대왕입니다.
조선의 임금 중에서 가장 장수했던 영조대왕은 지금으로부터 250~300년 전에 83세까지 장수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100세를 넘긴 정도로 엄청나게 오래 살았습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이고, 60세를 넘긴 경우가 6명뿐이죠. 사실 왕들은 장수하기가 쉽지 않은데, 막중한 국정의 중요 사항에 대하여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신하들의 왕권에 대한 도전과 역모에 늘 노심초사할 뿐 아니라 왕비와 후궁 및 왕자들의 문제로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가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조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 영조대왕의 초상화
첫째, 신장의 정기를 강하게 타고나다
영조는 부모로부터 건강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어머니였던 숙빈 최씨가 무척 건강했고, 부친이었던 숙종도 당시로서는 비교적 장수인 60세까지 살았으니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지요. 이러한 경우를 선천 품부가 강하다고 합니다. 선천 품부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으로 건강·장수의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데, 근본 기운이 바로 ‘신장(腎臟)의 정기’입니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콩팥 뿐만 아니라 비뇨생식기 전부와 성 호르몬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을 모두 합한 개념으로 방광·생식기·뇌·허리·뼈·치아·귀·머리카락 등까지 신장의 정기를 받아야만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신장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두뇌가 총명한 것도, 뼈대가 튼튼한 것도 실은 신장의 정기가 충만하기 때문이죠. 신장의 기가 왕성하면 생장, 발육이 왕성하고 신체가 건장해지고 성기능도 좋습니다. 반면, 신장 기운이 쇠퇴하면 기력이 쇠약해지고 정력이 감퇴하며 뇌졸중, 치매, 당뇨병, 골다공증 등의 성인병에 걸리게 됩니다. 또한 노화의 주된 원인이 신장의 정기 허약이므로 신장의 정기가 강해야 장수할 수 있는 것이죠.
둘째, 음식 양생법을 충실하게 실천하다
우선 소식하였고, 특히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조선의 왕과 왕비들은 대부분 나라가 흉하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백성과 아픔을 같이 하려고 합니다. 흉년에는 반찬을 줄이거나 낡은 옷을 입는 것이 미덕으로 전승되어 왔습니다. 영조도 가뭄이 들면 하루 다섯 번 먹던 수라를 세 번으로 줄이고 반찬 수도 반으로 줄였으며, 심지어 간장만으로 수라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고 소식을 한 것이 장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현미, 잡곡 같은 거친 음식을 즐겼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쌀이 귀했는데, 왕이라면 당연히 쌀밥을 먹지만 영조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같은 잡곡밥을 먹었던 것이죠. 그것이 결과적으로 당뇨병, 고혈압 등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세종대왕은 영조와 달랐습니다. 세종은 대식가인데다 육식을 즐겨 운동도 적게 한데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바람에 당뇨병에 걸리고 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54세로 승하했습니다.
- 세종대왕의 초상화
조선시대에는 술의 원료가 되는 쌀이 부족했기 때문에 ‘금주령’이 자주 내려졌는데,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강력히 시행했던 왕이 바로 영조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만들어 팔거나 마시는 사람을 잡아오지 못하는 신하는 벼슬에서 쫓아내거나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심지어 집안 잔치에 술을 만들었던 종2품, 요즘의 차관급 신하를 잡아 목을 베어 성문에 내걸었다는 기록도 있지요.
영조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시기는 했지만 금주령 때는 술 대신 생강차를 마셨고, 심지어 종묘에 술을 올릴 때도 감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술을 적게 마신 것도 건강을 지킨 비결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금주령 기간에 ‘송절차(松節茶)’를 즐겨 마셨는데, 실은 ‘송절주(松節酒)’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조는 하반신 관절이 약했기에 송절주가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죠. ‘송절(松節)’은 소나무의 가지가 갈라지는 마디로서 사람의 가지에 해당되는 팔과 다리의 병에 효과적입니다. 팔다리가 저리고 아프며 시큰거리거나 관절을 굽히고 펴기 어려운 병증에 효과가 있는데, 뼈마디에 있는 풍기와 습기를 물리치고 근육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죠.
넷째, 건강관리에 철저하게 신경 쓰다
평소 늦게까지 회의를 하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중단하고 제 때 끼니를 챙겨 먹었다고 합니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데 기본이죠. 또한 사형을 판결하고 나면 꼭 손을 씻어서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리려 했다고 하는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생활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백성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들으려고 부지런히 궁궐 밖으로 미행(微行)을 다녔습니다. 그것이 500회가 넘는데요, 당연히 걸어 다녔기에 저절로 운동이 되었던 것이죠.
☞ 영조대왕이 신장이 강하다는 명백한 증거
영조의 신장이 강하다는 증거는 수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풍성한 수염을 자랑했습니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신장의 정기를 받는 곳이죠. 역시 신장의 정기를 공급받는 두뇌가 매우 총명했기에 독서와 창작 활동을 통해 글씨나 시, 산문 등을 수천 권 넘게 남길 정도로 학문의 경지가 높았고 특히 기억력이 뛰어났습니다.
- 해구신
그리고 70세가 넘어서까지 성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나이에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요즘도 쉽지 않은데,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죠. 그것은 신장의 정기가 강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신장은 성호르몬과 성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신장의 양기와 음기는 정력의 바탕입니다. 최고의 정력제로 알려져 있는 해구신(海狗腎)의 ‘신(腎)’이 바로 물개의 성기입니다. 그래서 정력을 강화시키는 주된 방법은 신장을 보강하는 것으로서, 스태미너 식품이라고 알려진 것은 거의 대부분 신장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한약을 자주 복용하다
영조는 특히 인삼을 오래 드셨는데, 영조 스스로 자신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인삼의 정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72세 때 1년간 20여근을 비롯하여 59세부터 73세까지 먹은 인삼이 100근을 넘었을 정도로 자주 복용했는데. 물론 이 인삼은 요즘의 산삼이죠. 그런데 인삼, 홍삼은 약효가 워낙 뛰어나지만 체질에 맞지 않으면 해가 됩니다. 또한 사람은 기와 혈, 그리고 음과 양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정상인데, 인삼 한 가지만 복용하면 기와 양만 강해지기 때문에 병증을 일으킬 수 있지요. 그래서 인삼에 다른 약재를 배합하여 복용하는 것이 좋은데, 영조는 인삼에 귤껍질을 넣은 ‘삼귤차(蔘橘茶)’, 인삼에 복령(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균체 덩어리)이라는 한약재를 넣은 ‘삼령차(蔘苓茶)’를 즐겨 마셨습니다.
여섯째, 늙어서도 성생활을 유지하다
영조는 64세에 왕비를 사별하고 삼년상이 끝나자 66세에 만 14세된 소녀와 재혼을 하였는데, 이 결혼도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당시에는 40세만 넘어도 중노인 취급을 받는 때였는데, 70세가 다 되어가는 분이 어린 소녀와 결혼했던 겁니다. 물론 나라의 왕비 자리를 비워둘 수 없기 때문이었지만, 영조대왕에게는 후궁도 여러 명 있었고 그녀들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새 중전이 궁궐에 들어온 뒤로는 후궁들의 처소에 발길을 딱 끊고 손녀 나이뻘 되는 어린 중전에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영조대왕은 워낙 건강하였기에 이 결혼이 아니었어도 오래 살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건 이후로 17년이나 더 살아서 83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 만 14세 때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로 책봉됐던 정순왕후./사진=영화 '역린' 캡처
일곱째, 의원의 정기진찰을 자주 받다
조선의 왕들은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게 되어 있으니 왕의 비서실에 해당되는 승정원의 업무지침서인 ‘은대조례’에 공식 규정이 있습니다. ‘문안진후(問安診候)’라고 하는데. 닷새마다 한 번씩 승지가 내의원의 의원과 함께 왕의 처소를 찾아뵙고 문안드리는 자리에서 왕의 건강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했습니다. 한의학의 종합진찰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의 사진(四診)을 모두 했던 것이죠. 망진(望診)은 눈으로 보는 진찰로서 얼굴을 비롯하여 눈, 코, 귀, 손톱, 혀도 포함되지요. 문진(聞診)은 말소리, 숨소리, 기침 소리 등을 듣고 환자 특유의 냄새를 맡습니다. 이것은 병자나 보호자로부터 질병과 관계있는 사항을 아주 자세히 묻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진찰이죠. 절진(切診)은 3가지로 나눠지는데요. 맥을 짚어보는 맥진(脈診), 피부와 통증부위 등을 직접 만져보는 촉진(觸診), 두드려보는 ‘타진(打診)’입니다. 물론 어의는 이미 왕이 드신 음식과 대소변 상태는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정기 진찰이 닷새에 한 번이면 한 달에 여섯 번이죠. 그런데 이것이 귀찮다고 자주 빼먹고 가끔씩 진찰받았던 왕들은 30대, 혹은 40대의 나이에 돌아가신 반면에, 기본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월 평균 11.7회나 진찰을 받았던 영조는 장수했습니다. 건강관리에 너무 지나치게 조심하고 염려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영조의 일생을 보면 부모로부터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고 노화를 억제시키는 비결을 실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식하고 술을 절제하며 운동이 될 만큼 활동하면서 건강관리에 힘썼던 것이죠. 게다가 늘 주치의들의 진찰을 받고 조언을 들으면서 좋은 한약도 계속 드셨기에 당시로서는 탁월하게 장수할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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