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백산~황석산 종주 산행(2000. 11. 19.)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기백산(1,330.8m)과 금원산(1,352.5m)은 거창군 위천면을 경계로 하고 있으며, 거망산(1,184m)은 함양군 서상면과 황석산(1,130m)은 함양군 서하면과 경계를 하고 있는 산들이다. 이들의 산을 오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무리한 등산을 하지 않으려면 이들 산중에 하나를 택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등산 코스이다. 조금 더 산행을 즐기려면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코스를 잡으면 좋은 산행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백산과 금원산을 오른다든지 황석산과 거망산을 오르는 코스가 그렇다. 산행을 하는 코스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기백산과 금원산을 올라 수망령재로 내려오는 길과 또 하나는 금원산 자연휴양림이나 지재미를 거쳐 가섭사로 내려오는 길, 아니면 서문가바위를 지나 미폭포로 내려오는 길이 있는데 이 코스를 거꾸로 오르기도 한다.
황석산과 거망산을 오른다면 보통 사평교나 탁현마을에서 산내골을 따라 황석산 피바위와 거북바위-두 봉우리가 위험한 암벽으로 되어 있어 안전에 특히 주의를 요함-를 오른 후 거망산을 거쳐 사평으로 하산하면 된다. 황석산에서 거망산으로 가는 도중 지치면 가는골이나 불당골로 하산하면 된다. 황석산과 거망산 역시 반대편에서 오르면 된다. 또 황석산은 함양군 서하면 농월정, 동호정이나 봉전리 우전마을에서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 황석산.
이 네 개의 산을 하루에 종주를 하자고 제의가 들어왔다.
하루만에 종주 한다는 건 무리다. 지도를 꺼내놓고 시간을 계산해보니 9시간이면 가능할 것 같았다. 점심 먹는 시간과 가다가 잠시 쉬는 시간을 합쳐 11시간이면 충분히 해낼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해가 짧아 일찍 출발해야 가능할 것 같았고, 행여 시간이 지체되거나 안전사고에 대비해 야간산행도 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
11월 19일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서 택시로 약속장소인 북부파출소 앞에 5시 40분에 당도하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서둘러 나온 탓에 쌀쌀한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일행이 오기를 20여분이나 기다렸다. 당초 세 사람이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두 사람이 합세해 모두 다섯 사람이 오늘 산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6시 7분, 진주를 출발하여 용추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배낭을 메고 7시20분 기백산에서 황석산까지의 종주산행을 시작했다. 발길에 부스러지는 낙엽과 더불어 얼어붙은 땅에 솟은 얼음을 밟아가며 기백산 정상을 향했다. 서서히 땀이 흐르자마자 능선에 올라서니 아침의 쌀쌀한 바람이 시원스레 느껴졌다.
9시 기백산 정상에 올랐다. 잠시 동안이지만 정상에 오르자마자 구름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방이 보이질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정상엔 아무도 없고 찬바람만 불어댔다.
잠시 쉬었다가 9시 13분 금원산으로 향했다.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시간을 일행보다 앞서 시간을 단축시키다 보니 동봉을 지나 한 시간만인 10시 13분 금원산에 도착했다. 금원산에서 바라본 거망산과 황석산은 저 건너 까마득하게 보이는데 언제쯤 저길 오르나싶어 염려스러웠다. 과연 저기까지 갈 수 있으려나?
10시 47분 뒤따라온 일행을 만나 안의면에서 거창군 북상면으로 넘어가는 수망령을 향해 하산했다. 금원산에 바라보면 멀기만 하던 수망령이 도중에 오르는 봉우리 하나 없어서인지 하산길이라 30분만에 도착하여 11시 17분, 다음 목적지인 거망산으로 향해 경사가 가파른 산길을 힘들여 오르기 시작했다. 지도상에는 수망령에서 은신치까지는 1시간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보다 17분이 더 걸려 12시 34분 은신치를 지나서 앞에 있는 산봉우리를 올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12시 44분 억새풀로 뒤덮여 있는 산봉우리에서 바람을 피해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모두들 별미로 가져온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 잔 들이키는 반주, 거기다 젓갈에 찍어먹는 싱싱한 배추. 아직도 갈 길이 먼 탓으로 더 마시고싶은 술을 자제하며 마음껏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1시 18분 갈 길을 재촉했다.
은신치에서 거망산까지는 1시간으로 표시되어있는데 저 멀리 바라보이는 게 2시간을 걸어도 닿을 것 같지가 않았다. 가는 도중에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너무 많아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발걸음을 더욱 지치게 했다. 몇 차례 산봉우리의 억새풀밭을 지나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거망산이 바로 앞에 바라보이는 재에서 잠시 휴식-종주하는 동안의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나서 2시 30분 출발하여 2시 50분 드디어 힘겹게 거망산에 오를 수가 있었다. 결국 은신치에서 거망산을 오르는데 1시간 50분이나 걸려 거의 두 시간이 걸린 셈이다. 거망산을 오르기 전 사평부락으로 내려가는 재-마지막 휴식을 취한 곳-에서부터 많은 등산객들과 지나치게 되어 생각지도 않은 시간을 뺏기게되어 될 수 있으면 이 때부터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황석산까지 산행하기로 했다.
거망산 정상을 밟아-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어 쉴 수가 없었음-본 후 쉬지 않고 황석산으로 향했다. 북봉을 지나서 4시경 마침내 황석산에 도착했다. 그러나 무려 아홉 시간을 걸어온 터라 힘에 부치는 것 같아 암벽봉 오르기를 포기한 채 4시 25분 황석산성에 도착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황석산을 올라 정말 감개무량했다. 뒤돌아보면 기백산, 금원산, 수망령은 아득히 멀리 바라보이고 우리가 언제 기백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추위에 얼었던 산길이 녹아 질펀한 황석산성 아래의 진흙길을 내려와 능선을 따라 심원정으로 하산했다.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도중 잘 나있는 등산로를 비켜 경사가 몹시 가파른 주 능선을 따라 계속 하산하여 연촌마을 뒤 계곡에 도착하니 날은 저물어 불빛이 없이는 산행을 할 수 없었다. 가져간 헤드랜턴을 켜고 도로에 도착한 시간이 정각 6시.
오늘의 모든 산행이 끝이 난 것이다.
10시간 40분의 산행. 돌이켜보면 오늘 산행은 무리였다. 지리산도 이만한 시간이면 수월한 편인데 이건 지리산 산행과는 달랐다. 지리산의 경우에는 큰 봉우리를 지나면 평탄한 길이 많은 데 비해서 기백산에서 황석산까지의 종주에는 산행도중에 높고 낮은 산봉우리가 너무 많은 탓에 무척 힘들고 지치게 했다. 대체로 높은 봉우리-오르내리는데 10분 이상 걸리는-가 7개나 되었다. 오늘 산을 오른 표고는 해발 2790m나 올랐다 내려왔으니 상당한 높이를 산행한 셈이다. 아무튼 일행 모두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쳐주어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었고 모두가 협심한 결과라고 믿는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