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거림-세석고원-장터목-천왕봉-법계사-중산리
오늘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 지리산 입산통제가 해제된다. 쌀쌀한 지리산 눈바람이 불어오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북파 앞에서 만난 세 사람. 오늘은 운전을 내가 맡게됐다. 7시 10분, 텅 빈 2차선 국도롤 고속도로 마냥 신나게 달린다. 덕산에 다다르자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천왕봉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50분도 채 안 걸려 거림에 도착해 배낭을 메고 세석으로 향하여 출발한다. 매표소를 지나 왼쪽으로 계곡을 함께 하여 등산로에 깔린 낙엽을 밟으며 정상을 향해 오른다. 거림에서 세석까지는 6㎞. 오르는 도중 간간이 눈의 흔적 볼 수 있었지만 해발 900m부터는 길에 쌓인 눈을 밟으며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천팔교를 지나 9시 2분 폭포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지난번 여길 왔을 때는 단풍이 절정이었었는데 그새 낙엽은 지고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만 그 때를 회상시켜준다.
9시 12분 북해도교(1,050m, 거림 3.2㎞, 세석 2.8㎞)를 지난 후 40 여분이 지난 9시 56분 세석교를 건너고 나서부터 가파른 능선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곳이 세석을 오르는 등산로에서 가장 힘든 곳이다. 세석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다행이 러셀이 되어있어 등산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오른다. 의신으로 가는 삼거리(세석 0.5㎞, 거림 5.5㎞, 의신 8.6㎞)를 지나 10시 25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에는 인적이 끊겨 조용하기 그지없다. 어쩌다 한 두 사람을 만났을 뿐 우리 세 사람이 전부다. 취사장에서 간식을 먹으며 20분쯤 쉬었다가 천왕봉으로 향한다.
촛대봉(1,730m, 장터목 2.7㎞, 천왕봉 4.4㎞, 세석 0.7㎞)에 올라서니 사방에 한 눈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유난히 날씨가 좋아-햇빛이 쨍하니 비치지 않고 구름 속에 있어도-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많은 섬들하며 남해 바다가 바라보이고 하늘엔 일직선의 구름층이 그 위로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저 멀리 남서쪽으로 하얗게 우뚝 솟은 무등산-제법 많은 양의 눈이 내린, 또한 서쪽으로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반야봉과 노고단, 그리고 만복대와 바래봉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북쪽으로는 저 멀리 북덕유산에서 남덕유산까지의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기온이 영하인지라 나뭇잎에 내린 하얀 눈꽃이 녹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있는 사이를 지나치면서 자연이 만든 순백의 신비로움에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함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를 완벽하게 담는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 손이 얼어 셔터를 누르기 힘든 상태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해 흔적을 남겨 둔다. 눈길이라 오르막은 그런 대로 오를 수가 있지만 내리막에는 미끄러지기 일수라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걸으려니 다리에 힘이 든다. 미끄러지는 위험부담은 없지만 무릎에는 상당히 부담이 느껴진다. 11시 50분 연하봉(1,730m, 세석 2.6㎞, 장터목 0.8㎞)을 지나 12시 7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석대피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붐벼 취사장 안은 만원이고 대피소 밖도 바람을 피해서 식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요행히 취사장 안에 자리를 잡아 장룡이가 준비해온 떡국을 끓여 배고픔과 추위를 한꺼번에 해결한다. 시장하기도 했지만 집에서 준비해 준 떡국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안 가져오는 매실주도 가져와 한잔 곁들이니 금상첨화. 결국 떡국으로 점심을 해결하다보니 내가 보온 도시락에 가져온 밥은 그대로 되가져 올 수밖에.
점심을 끝내고 12시 40분 천왕봉으로 향했다.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이 무척 힘겹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 심호흡을 하면서 힘들게 올라 13시 제석봉(1,808m, 장터목 0.6㎞, 천왕봉 1.1㎞)엘 올랐다. 세석에서 장터목 오는 동안엔 거의 사람들을 못 만났는데 장터목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늘이 지리산 개방 첫날이라 단체팀도 몇 팀이 온 모양이다. 13시 20분 통천문(1,811m, 천왕봉 0.5㎞, 장터목 1.2㎞)을 지나서 13시 40분 천왕봉(1,915m)에 올라섰다.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 정상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얼른 사진을 찍고는 하산을 서둘렀다. 땀이 다 식기 전에 하산해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파른 천왕봉 바로 아래를 성큼성큼 뛰어 내려간다. 그것도 눈이 쌓여 위험한 돌계단을. 아무도 오르지 않는 순간을 이용해 한 번 뛰어 내려가 보았다. 뒤따라오던 두 사람은 내가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나싶어 은근히 걱정했나보다. 14시 9분 개선문(1,700m, 천왕봉 0.8㎞,법계사 1.2㎞, 중산리 4.6㎞)에 도착했다. 아이젠을 계속해서 착용하고 하산하다보니 무릎에 약간의 통증을 느껴 조금 미끄러운 눈길이라도 아이젠을 벗고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몇 차례 미끄러지는 고비를 맞았지만 잘 넘겼다. 14시 38분 법계사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가 하산을 서두른다. 단체팀이 길은 가로막는 바람에 자연 하산길이 지체되는지라 좀 서두르기로 했다.
신선너들 아래 바윗길은 눈은 다 녹고 없는데도 녹은 눈이 얼어 빙판길로 변해있어 더러는 엉금엉금 기듯이 조심해서 통과해야 했다. 15시 7분, 망바위(1,068m, 천왕봉 3.0㎞, 중산리 2.4㎞)를 지나서 계단길을 내려서자니 왼쪽 무릎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 걸음을 걷는데 큰 지장을 없어 그나마 다행인데 원인은 아이젠을 착용하여 무리한 것 같았다. 15시 36분 칼바위를 지나 16시 정각, 드디어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하여 오늘의 산행을 무사히 끝냈다. 산행을 마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에 육신의 피로도 말끔히 사라진다.
오늘은 가을에서 겨울로의 긴 시간 여행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도 밟아 보았고,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밟히는 눈길도 걸어 보았다. 설화가 만발한 하얀 터널을 지나칠 때엔 마치 천상을 거니는 기분처럼 하늘을 나는 기분인양 한없이 즐거웠다. 정말로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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