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목통-연동골-화개재- 삼도봉-불무장등-피아골
태풍도 두려울 게 없다.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도 마음먹은 산행은 계속 되어야 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하지만 갈 수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한다.
빽빽이 들어 찬 온갖 나무와 가시덤불 사이로, 험난한 바위와 계곡을 타고서라도 가야 한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하동 신흥으로 향했다.
6시 목통에서 출발하여 연동골을 따라 비를 맞아가며 산행을 시작하여 8시 12분에 화개재엘 올랐다.
반갑게 맞아주는 노란 원추리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
발아래 저 만치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니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 아닌가 싶다
삼도봉(1,550m)을 오르는 경사진 길을 얼마 전 나무계단(550계단)-지리산에서는 가장 긴 나무계단(?)-으로 말끔히 단장해 놓아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한결 수월하게 해 준다. 특히 겨울철 눈이 왔을 때 아이젠을 신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일부분을 고무판으로 깔아 나무계단의 손괴를 줄일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8시 40분, 삼도봉엘 올랐으나 사방이 구름으로 덮여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바로 남쪽 절벽 끝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찾아 9시 9분 불무장등 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능선을 따라 불무장등을 오르고는 계속해서 능선을 따라 남하하기로 했다. 통꼭지를 지나고 당초 하산하기로 예정한 당재에서 계획을 바꿔 황장산과 촛대봉을 올라 계속 능선을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발길이 뜸한 곳이라 등산로 찾기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곳곳에 산돼지들이 파헤친 흔적을 따라 가다가 어미 산돼지와 귀여운 새끼 산돼지를 만났다. 시커먼 어미 산돼지가 약 10m 전방에서 화들짝 놀라 울부짖으며 돌진하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던지... 제 새끼는 바로 두세 발 앞에 있었으니 갑자기 모성애가 발동한 거지.
이 무더운 여름에 낙엽을 밟아 보셨나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니 발끝으로부터 느끼는 부드러운 촉감하며 밟히면 조용히 바스락거리는 오묘한 소리.
가을에 밟아보는 낙엽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어 좋았다.
그 즐거움도 잠깐.
촛대봉에서부터는 전혀 길이 없는 게 아닌가?
울창한 숲에 가려 사방을 가늠할 수가 없어 능선만 찾다가 길을 잘못 잡은 게 딴 방향으로 한참을 헤맨 후에 도로에 당도하고 보니 연곡사 계곡 쪽으로 오게 되었다. 2호선 국도가 있는 섬진강까지 완전 종주도 못하고 그것도 쌍계사 쪽으로 하산했어야 하는데 딴 방향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비는 계속 내렸다. 시원한 계곡 물에 옷을 입은 채 몸을 담그니 피로가 일시에 가시는 듯 했다.
오늘 산행은 당초 6시간으로 계획했지만 무려 10시간이나 산행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도로를 따라 30여분을 걸었으니 상당히 힘든 산행이었다. 무리한 줄 알면서도 묵묵히 함께 해준 하 과장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하루종일 빗속에서도 힘들었지만 정말, 정말 즐거운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