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지리산 당일 야간종주

영봉 2006. 9. 7. 18:53
 

지리산

당일치기 야간 종주

 

 

  8월 5일. 날씨가 그럴 수 없이 좋았다.

어제까지 폭우가 쏟아져 행여 오늘도 비가 오거나 태풍이라도 불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렇게도 날씨가 좋으니 우리들의 산행이 더 없이 즐거웠으며, 게다가 폭우로 입산이 통제된 지리산의 입산통제도 해제되어 모든 일정이 순탄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지리산을 야간 종주하기로 약속하고 오후 세시 북부파출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들 들뜬 기분인지 약속시간보다 빠른 5분전에 다 모여 성삼재로 향했다. 함양 마천을 거쳐 달궁을 경유하여 1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4시 30분에 목적지인 성삼재에 도착하여 짐을 꾸린 후 지리산 야간 종주 대장정의 길에 올랐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식수를 준비한 후 노고단 정상으로 올랐다. 어제까지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시계가 밝아 사방이 훤히 바라보였다. 마치 우리들의 장도를 축복이라도 해주는 듯 우리가 가려는 천왕봉도 반야봉 오른쪽에 그 웅장한 자태를 들어내 보였다.

5시 30분, 노고단을 출발 천왕봉으로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임걸령을 지나고 7시 30분에 삼도봉(1,550m)을 올라 잠깐 휴식을 취했다. 사방이 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반야봉도 사라지고 사방이 구름에 가려 적막감이 감도는 것 같았다. 결국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인 반야낙조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삼도봉 550 계단-올 해 만들어진 나무계단-을 내려와 8시경 화개재에 당도하니 주위가 점점 어둡기 시작했다.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토끼봉(1,537m)을 거쳐 명선봉(1,586m)을 오르니 멀리서 발전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연하천대피소의 발전기 소리였다. 곧 이어 대피소의 불빛이 보였으나 한참을 걸어 밤 10시 10분 경 연하천대피소에 당도했다. 가는 도중 지난번 폭우에 등산로가 많이 파손된 탓에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가지고 간 떡과 미숫가루로 저녁을 대신하고 10시 30분 출발하여 벽소령으로 향했다. 등산로는 역시 연하천대피소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험난했다.


  삼각봉(1,462m)과 형제봉(1,442)을 지나니 벽소령대피소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차 발전기소리도 커지고 이내 벽소령대피소(1,426m)에 도착하여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밤 12시에 벽소령에 도착했다. 대피소-연하천대피소도 마찬가지지만-에는 산장 안에 들어가지 못 한 등산객들이 밖에서 비박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벤치에 누워 때마침 맑게 갠 밤하늘의 별들은 그렇게도 유난히 반짝이는지․․․․

 

  잠시 동안의 사색을 멀리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갈 길을 보채 천왕봉으로 향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순탄한 등산로가 이어져 지치는 줄 모르고 덕평봉(1,538m)을 오르기 시작했다. 덕평봉을 올라 선비샘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생수를 한 모금 들이키니 힘이 솟는 듯 했다. 칠선봉과 영신봉(1,690m)을 올라 세석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 20분. 여기서 따끈한 국물이라도 먹어야 나머지 여정을 마무리 할 힘이 생길 것 같았다. 라면을 끓여 셋이서 의좋게 나눠먹고 3시 반에 천왕봉으로 향했다. 촛대봉(1,710m)에 오르니 멀리 진주시가지의 환한 불빛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엔 광양만의 불빛도 보였다.


  삼신봉, 연하봉(1,667m)을 오르니 서서히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여 랜턴을 끄고 여명의 빛을 따라 걸었다. 장터목대피소에 도달하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주위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행여 저 멀리 산아래 골짜기에 걸려있는 하얀 운해라도 한 장면 렌즈에 담으려는 기대감으로 나 혼자 먼저 제석봉(1,806m)에 올랐건만 구름 속에 쌓여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천왕일출은 구경 못 해도 천왕봉이라도 바라볼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그 간절한 바램도 허사였다. 오르고 또 오르고 통천문을 지나 마침내 그리던 천왕봉(1,915.4m)에 올랐다.


  8월 6일 아침 6시 20분.

잠깐동안 머문 천왕봉.

그러나 천왕봉도 바람이 거세게 불고 구름이 쉴 새 없이 넘나드는 통에 그리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지친 몸을 일으켜 중산리로 향하여 하산하기 시작했다. 자연학습원 쪽으로 해서 중산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

지리산 대장정의 야간 종주가 끝난 셈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12시간 50분이나 걸렸지만 지치는 줄을 몰랐다. 잘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랜턴의 불빛만 따라 여기 천왕봉까지 온 것만 해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용기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믿어지지 않을지 몰라도 야간종주 한다는 그 발상 자체가 모두들 무리라고 했지만 우리는 해내고 말았다.

나는 지금까지 산을 좋아해서 산을 찾았지만 이렇게 해낸 걸 자랑으로 여기고 싶다. 내 생전에 두 가지 기록을 세운 셈인데 그 하나는 하루 꼬박 잠 안자고 안 졸아 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밤새도록 야간 등산한 것이다.


  지리산 야간 종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중산리까지 무려 16시간 30분 동안을 잠도 전혀 자지 않고 산행을 했다. 물론 먹고 잠시 쉬는 시간을 포함한 시간이지만 전문 산악인들의 기록에 비교가 안 될지 모르지만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같이 한 동료들의 힘이 매우 컸다. 오직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격려가 힘이 됐고 서로간의 호흡이 맞아 무사히 지리산 야간종주를 마치게 된 것이다.


  함께 산행을 한 수업과 하장룡 과장-요새 부쩍 산을 좋아하는 도서관 김성규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함께 산행한 두 사람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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