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지리산(삼각봉)

영봉 2006. 9. 7. 18:57
 

지리산

반선-와운-삼각봉-명선봉-토끼봉-뱀사골-반선

 

  지리산을 종주하려면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삼각고지(삼각봉 1,462m)가 있다. 연하천과 벽소령 사이에 있는 삼각고지는 6.25당시 치열했던 전투지역이었다. 연하천에서 삼각고지를 거쳐 벽소령에 이르는 이 길을 '피의 능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각고지는 북쪽으로는 영원사 능선을 거느리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계곡인 빗점골이 있다.


  오늘은 반선에서 출발하여 삼각봉을 올라 뱀사골로 되돌아오는 산행을 하기로 하고 새벽 5시 진주를 출발했다. 이른 새벽이라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터라 아무 거리낌 없이 마치 도로 전체를 전세라도 낸양 상큼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빈 포도 위를 시원스레 달릴 수 있었다. 구름이 산등성이를 감싸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은 볼 수 없었지만 등산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였다.


  6시 5분경 반선에 도착하여 안내소 바로 곁에 주차를 하고 배낭을 챙겨 등산길에 올랐다. 날이 훤히 다 샜는데도 등산객이라곤 우리 두 사람뿐, 계곡에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소리만이 새벽의 적막을 깨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어느새 여름은 지나갔나 보다. 그토록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전혀 들을 수가 없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는지 성급한 낙엽이 떨어져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한다.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와운교에 다다르는데 다리를 건너면 오른 쪽에 뱀사골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져 있고 도로를 따라 곧장 오르면 와운 마을로 향한다. 예전엔 반야교(지금의 와운교 자리)가 있을 땐 등산로가 계곡을 건너도록 되어 있었는데 새로 와운교를 새로 놓은 뒤부터는 나무 계단길을 이용하도록 안전시설을 해 놓았다.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천년송이 있다는 이정표가 군데군데 서 있는 데 마을 위 산등성이에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 와운 마을 바로 아래에 천년송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잘 되어 있다.


  6시 46분, 마을에 들어서서 조금 올라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농로가 나오는 데 이 길을 따라가니 바로 와운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을 건너지 말고 계속해서 계곡을 오른 쪽으로 하여 잘 다듬어진 등산로-동네에서 벌초하느라 그랬는지-를 따라 걸었다. 물소리를 벗 삼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산길이라 그리 힘드는 줄 몰랐다.


  7시 40분쯤, 해발 950m 지점의 갈림길에서 연하천대피소로 가는 계곡을 따라 오르느냐, 아니면 능선으로 올라 삼각고지로 오르느냐 망설이다가 능선으로 올라 삼각고지로 오르기로 했다.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가파른 능선길이라 호흡이 점점 가빠지기 시작했다. 영원사 능선에 올라섰으나 구름에 가려진 웅장한 지리산의 능선을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어쩌다 잠깐 반야봉이 보일락 말락 하다간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어느새 햇빛이 비치나 싶더니 곧장 구름이 스쳐 지나가니 사방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인적이 드문 등산로라 풀잎과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옷에 흠뻑 적셔져  바지가랑이를 타고 흘러내린 물이 등산화 안에 가득 차 발걸음을 뗄 때마다 뿌지직뿌지직 소리를 낸다. 이럴 땐 아무리 방수처리 잘 된 등산화도 별 수 없다니깐.


  9시 48분, 드디어 삼각고지(1,462m)에 올랐다. 삼각고지에서 동쪽으로 가면 벽소령, 서쪽으로 가면 연하천 대피소로 향한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여 잠깐 휴식을 취하고서 연하천으로 향했다. 조금 후 10시 10분 경 지리산 주능선의 등산로가 나타났다. 지난 번 야간 종주 시에 지나간 길인데도 처음 대하는 길 마냥 낯설어 보였다. 드디어 연하천의 보호철책이 나타났다. 10시 30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했다.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시원한 물까지 흐르고 있는 연하천은 주능선 상에서 가장 안락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서쪽 노고단에서 출발한다면 가장 많이 지치는 곳으로 이곳에서 벽소령까지가 주능선 상에서 가장 힘들고 고독감도 크다.

10분쯤 쉰 후 연하천의 시원한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300개의 나무 계단을 올라 명선봉(1,586m)을 오르고 토끼봉(1,537m)을 올랐다. 추석 연휴를 맞아서 등산객들이 좀 많은 편이라 더러는 길을 피하느라 산행시간이 늦어지기도 했지만 화개재에 당도한 시간이 12시 10분, 때 맞춰 점심을 먹었다. 그름에 가려진 지리산은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내 주지 않았다.


  12시 45분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뱀사골대피소를 지나 반선으로 향했다. 대피소를 지나 막차, 상차를 지나니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간장소-소금장수가 계곡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소금이 녹아 버렸다는-가 나타났다. 물소리를 즐겨 들으며 단심폭포, 마치 병 모양의 병소,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뱀소, 긴 암반 위로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탁용소, 용이 머리를 흔들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는 흔들바위 오룡대 등 자연이 만든 경이로움에 심취되어 9.2Km의 하산 길도 피곤한 줄 몰랐다. 뱀사골의 등산로는 개방되어 있지만 뱀사골 계곡(오룡대에서 막차 위까지)은 2002년 말까지 휴식년제 시행기간이 다시 연장되어 계곡으로 향한 등산로엔 흰줄이 쳐져 있었다. 아침에 건너온 와운교를 지나 반선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3시 16분, 오늘의 산행이 모두 끝난 것이다.


  삼각봉(1,462m), 명선봉(1,586m), 토끼봉(1,537m) 등 3개의 고봉과 해발 1,465m를 오르고 1,465m를 내리는데 소요된 시간은 9시간 10분, 오늘 역시 많은 시간을 걸었다. 몇 차례 산행을 했지만 그 때마다 비가 왔는데 오늘은 비도 오지 않고, 해도 나지 않아 산행하기엔 그럴 수 없이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옷이 풀숲을 지나고 산죽밭을 지나면서 흠뻑 젖은 탓에 약간의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산을 오를 때면 무척 힘들지만 조금만 힘 들여 다녀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렇게 개운하고 더없이 기분이 좋다. 이곳을 떠나기 싫어도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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