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걸산, 바래봉, 덕두봉"
오늘은 직원산악회에서 바래봉을 가기 위해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출발했다. 새벽 3시에 출발하는 월간사진 회원과 함께 바래봉을 가려했으나 아무래도 철쭉이 예년만 못 할 것 같아 등산을 목적으로 하여 바래봉을 찾으려고 직원산악회에 합류하기로 했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꽃이 화사하게 피질 못하고 시들어버려 좋은 작품은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7시 33분, 부광관광 버스편으로 칠암동을 출발하여 북파 앞을 거쳐 고속도로를 달린다. 버스 기사가 지리에 어두운 편이라 정령치가는 길을 잘 모른다했다. 생초 인터체인지에서 빠져야 하는데 계속 달리는 바람에 조금 지나쳐 차를 세워 후진하여 생초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왔다. 날씨는 안개처럼 가스가 많이 끼여 뿌옇다. 진주를 출발하여 정령치까지 도착하는데 약 1시간 40분이나 걸렸다. 반선을 지나 정령치로 오르자 날씨는 화창하게 갠다. 정령치 휴게소에는 우리들처럼 산행을 하러온 산꾼들로 몹시 붐빈다. 휴게소 화장실에는 볼일 보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섰다.
9시 30분, 일행들이 다 모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에 일부는 앞장서 출발하기로 한다. 뙤약볕 아래 꼬리를 물고 잇달아 오르는 무리 속에 섞여 고리봉을 향해 오른다. 10분쯤 올라 이정표(바래봉 9.2㎞, 팔랑치 7.7㎞)를 지나서 9시 55분, 우뚝 솟은 고리봉(해발1,305m, 바래봉 8.6㎞, 정령치 0.8㎞)에 오른다. 간간이 피어있는 철쭉은 그리 싱싱하지가 못하다. 수없이 찾아드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싫어서인지 아직 피지도 못한 봉오리를 맺고 있는 철쭉도 시들시들 생기가 없어 보인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은 그늘이라고는 없다. 바람마저 한 점 없는 산행, 갈 길은 먼데 앞서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디다. 그대로 뒤 따라 가다간 언제 목적지까지 갈지 몰라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 좁은 등산로를 여러 사람이 가다보면 바쁜 사람을 위해 길을 양보해주는 미덕이 참 아쉬웠다. 심지어 어린 아기까지 동반해 천천히 가는 젊은 사람들이 자식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서인지 선뜻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산행을 무슨 뒷동산 나들이쯤으로 아는 모양이다.
11시 9분, 1,120m의 헬기장을 지나서 곧바로 청소년수련원으로 내려가는 세동치(해발 1,110m, 정령치 4.3㎞, 바래봉 5.3㎞, 청소년수련원 2.1㎞)를 지난다. 정령치 5.3㎞, 바래봉 4.3㎞, 운봉 7.5㎞인 지점을 지나서 11시 21분, 소나무 그늘을 찾아 휴식을 취했다. 정령치를 떠난 지 정확하게 두 시간만에 처음으로 쉬었다. 잠시나마 쉬었다 일어나니 한결 발걸음이 가볍다. 11시 56분 부운치(해발 1,115m, 바래봉 3.1㎞, 정령치 6.5㎞)를 지나 정상으로 오른다. 가파른 길이라 오르는데 제법 숨이 차다. 정상에 오르니 점심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래봉의 철쭉 군락지에는 철쭉보다 오히려 철쭉 사이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리가 더 많아 보인다. 철쭉의 색깔도 그리 고와 보이지도 않고, 꽃도 지난번 많이 내린 비로 떨어지고 시들어버렸다. 그런대로 이따금 화사한 몇몇 그루의 철쭉을 즐기면서 12시 20분에 팔랑재 철쭉 군락지에 도착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워낙 많은 인파가 이곳을 찾기 때문에 군락지의 철쭉 훼손을 막기 위해 나무 계단길을 만들어 놓았건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훼손이 되고 있었다. 광선도 안 좋고, 더욱이 철쭉도 색깔이 바래고 시들어 안 좋지만 그래도 가져온 카메라를 꺼내 열심히 몇 장면 담아본다. 여기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왔으니 뭐라도 하나 만들긴 만들어야 할 텐데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질 않을 것 같다.
배낭을 챙겨 정상으로 올라와 철쭉 군락지 저 너머로 지나온 고리봉과 세걸산을 바라본다. 행여 뒤에 오는 일행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뙤약볕이지만 일부러 높은 곳에 올라 자리를 잡고서 점심을 먹는다. 일행이 어디쯤 오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전화를 해도 전혀 응답이 없다. 하는 수 없이 갈 길을 재촉하여 13시 35분, 바래봉을 향하여 출발하여 출발한다. 임도의 넓은 길도 오가는 등산객들로 꽉 차 혼잡하기 그지없다. 발길에 날리는 흙먼지를 피하려고 수건으로 입을 막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로 무척 혼잡하다. 바래봉 바로 아래에 있는 샘에는 물을 마시려는 사람들로 기다랗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 한 그루도 없는 바래봉(1,165m)을 향해 몹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14시 10분, 바래봉 정상에 올라섰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기보다는 안 가본 코스를 택해 덕두산을 거쳐 인월 쪽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이곳 바래봉까지 오는 동안 줄곧 햇볕을 받으며 왔었지만 지금서부터는 나무그늘 속을 지나가니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마음까지 상쾌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뻘뻘 담을 흘리며 산을 오르내릴 때는 힘들어 육신이 지쳐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신선한 공기와 산의 기를 온몸 가득 받아 힘이 불끈 솟구치니 발걸음이 훨씬 가볍고 경쾌하다. 낙엽이 쌓인 등산로인지라 발아래 밟히는 감각도 부드러워 발에 무리도 덜하다.
14시 36분, 덕두산(해발 1,150m, 인월 1시간 30분, 바래봉 1시간)을 올랐다. 쉬지 않고 하산하다가 한 오 분쯤 지나 왼편으로 휴양림 가는 갈림길을 지나 계속해서 능선으로 내려간다. 해발 900m 고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목을 축인다. 이제 오르는 길은 거의 끝나고 내려가는 길뿐이다. 800m 능선에서부터는 마을 뒤 임도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소나무가 무성한 숲 속을 지난다. 15시 42분 임도를 만나 조금 내려서니 계곡이 나온다. 계곡에서 땀에 찌든 얼굴을 시원스레 씻으며 계곡의 물을 실컷 들이마신다. 온 몸의 피가 깨끗해지는 것 같다. 중군 마을을 지나 마을 입구 중군교를 건너 인월읍으로 향한다. 운봉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려면 걸어서 인월까지는 가야하기에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인월까지 걸었다. 16시 26분 인월읍에 도착하여 마트의 시원한 맥주 두 캔으로 목마름과 피로를 함께 풀며 오늘의 철쭉 산행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