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석산 정상에서"
재로 올라가는 길.
한적한 도로를 따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누가 오라해서 가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흥에 겨워 힘든 줄 모르고 산길을 오른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마을을 지나고 재에 오르니
어서 산꼭대기에 오르고 싶네.
진달래 꽃봉오리는 어느새 봄소식을 알려주고
나뭇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은 언 땅을 녹여준다.
정상이다.
사방이 한 눈에 든다.
북쪽의 여항산과 오곡산, 그리고 저 멀리 자굴산은
엊그제 내린 눈을 하얗게 이고 있고,
동쪽의 진동만과 남쪽의 배둔, 그리고 당동 앞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가
햇빛에 부서져 빤짝인다.
뿌연 가스가 낀 하늘이지만
가까이서 줄지어 늘어선 산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 있고,
태양은 구름 조각 속에 숨어
여러 가닥으로 조명등처럼 빛을 내리쏟는다.
산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세상.
조그만 장난감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저리도 바쁘게 움직여야만 하는가?
나 역시 그처럼 살고 있지만
이 순간만은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며 이상향을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