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지리산

영봉 2006. 8. 4. 22:38

"지리산"

 

            중산리-천왕봉-대원사 코스

 

  오늘은 지난해 황금능선을 시간이 부족하여 종주하다 말고 못 마친 숙제를 풀 생각으로 지리산으로 향한다. 평소와는 달리 샘이 없는 능선을 장시간 산행을 해야 함으로 물을 두 병이나 준비하여 7시에 출발하는 중산리행 첫 버스 편으로 지리산을 향해 출발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여러모로 편하기 한량없다.

  첫째, 차를 가져가는 번거로움과 피로를 덜고,

  둘째, 일행들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안 줘서 좋고,

  셋째, 하산한 후 차를 회수하는 문제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넷째, 산행 코스도 마음 놓고 정할 수가 있어 좋고,

  다섯째,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에너지 절약차원에서 애국하고,

  여섯째, 차창 밖을 스치는 경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좋고,

  일곱째, 뭐니 뭐니 해도 하산하여 시원한 맥주 한잔 마음 놓고 마실 수할 수 있어 좋은 등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을 수 있다.


  혼자서 산행을 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능력에 맞는 계획을 세워 부담 없이 산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산리를 출발하여 천왕봉을 올라 중봉, 써리봉을 거쳐 황금능선을 타고 구곡산(961m)을 올라 외공마을로 하산하는 종주코스를 잡았다. 산행 시간은 대중 잡아 10시간 정도로 계획했다. 첫차라서 그런지 손님도 십 여 명 남짓한데 그 중에 등산객은 나를 포함하여 7명, 버스가 출발한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나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한다. 버스에 내린 즉시 매표소로 오르는데 앞서가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 오르는 도중 길가 벚나무의 새까만 열매를 몇 개 따서 입에 넣어 씹었더니 아직 덜 익었는지 쓴맛이 받쳐  뱉었는데 한동안 입 안이 써 침을 삼킬 수 없을 지경이었다. 20분도 채 안 걸려 매표소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일찍 도착한 차들만 주차해 있을 뿐 등산객들은 산을 올랐는지 한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매표소를 지나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마엔 벌써 땀이 송송 맺혀 길바닥에 떨어진다. 오늘은 산행 소요 시간이 적어도 9시간 이상이 걸릴 것 같아 되도록 쉬지 않고 산을 오르기로 한다.


  8시 50분, 칼바위를 지난다. 가파른 계단길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여 오른다. 이마에 동여맨 손수건은 이미 땀으로 포화상태가 되어 비 오듯 뚝뚝 떨어진다. 망바위(1,068m)에 올라서니 계곡에서 산등성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숨을 고르며, 약간은 지친 듯한 몸을 이끌고 나와의 약속을 깨지 않으려고 끈기로 밀어부친다. 험한 바위 길을 오를 때에 가까이 법계사에서 염불소리가 마치 나의 안전 산행을 빌어주는 듯 낭랑하게 들려온다. 법계사가 바로 맞은편에 바라보이는 정상에 서서 절 뒤편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천왕봉을 바라보며 기를 모아본다.


  법계사 바로 아래 샘물로 목을 축이면서 잠시 에너지를 충전한다. 여기까지 쉬지 않고 올라온 터라 약간 지쳐 앞으로 남은 산행을 위해 체력을 안배하려고 천천히 천왕봉을 오르기로 한다. 일찍 올랐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천왕샘을 올랐는데 날씨가 가문 탓인지 물이 말라있고, 길은 먼지가 풀풀 날린다. 천왕봉엘 오른 시간이 11시 정각, 매표소에서 2시간 30분 걸렸다. 천왕봉에 올라보니 이상하게도 평소와 달리 몇몇 사람들만 보인다. 잠시 쉬어 피로를 풀며 오늘 하산할 코스를 눈여겨본다. 황금능선 위로 구름이 가끔 산허리를 넘나드는데 저 멀리로 구곡산이 우뚝 솟아 있다.  갈 길을 재촉하여 중봉(1,874m)으로 향한다. 중봉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보며 족적을 남긴다.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써리봉(1,602m, 대원사9.5㎞, 치밭목1.8㎞, 천왕봉2.2㎞)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등산객은 불과 다섯 사람정도. 대원사 코스는 다들 잘 안 가는 길이라 그런지 발길이 뜸하다. 써리봉을 지나 황금능선이 시작되는 갈림길에 당도한다. 예전에는 ‘등산로 아님’이란 팻말이 있었는데 오늘 와 보니 갓 세운 큼지막한 ‘경고판’이 대신 이 자리에 세워져 있다. 내용인즉슨 이곳이 반달곰 서식지라서 출입을 금지하며 위반 시에는 5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고 적혀있다. 몰래 혼자 숨어들어 가느냐, 아니면 대원사로 하산하느냐 하는 갈등에 사로 잡혔으나, 오로지 나 하나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지 말라는 짓은 금해야 할 것 같아 당초 목적을 변경하여 대원사로 하산하기로 했다. 당초의 숙제를 풀지 못한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치밭목으로 향한다. 약간의 허탈감에 발걸음이 무거움을 느낀다. 대피소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어도 별로 먹히지 않아 도로 챙겨 짐을 꾸린다.


  대피소에서 폭포로 하산하는 길, 계곡에 다다르자 예전-약 30년 전-에 두 사람이 천왕봉에서 대원사 이 길로 하산할 때 나무를 주워 불을 지펴 항고에 밥을 해 먹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등산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았던 그 때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4시간 만에 주파한 적이 있다. 지금은 위험한 곳에 구조물을 설치하여 오르내리는데 수월하지만 그 땐 위험한 곳이 많아 오르내리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3시 48분 새재 삼거리에서 계곡을 끼고 대원사로 향해 하산하는 도중 무제치기폭포가 바라보이는 바위에 올라 잠깐 쉬었다. 폭포는 물이 말라 볼 수 없고 시커먼 그냥 바위만 들어내 보인다. 상큼한 녹음의 향기를 듬뿍 마시며 14시 10분, 나무계단길 재(치밭목 2.8㎞, 대원사 4.9㎞)에 오른다. 계단을 오를 때보다 내려가는 길은 힘은 덜 들어도 터벅터벅 걸어 내리자니 무릎이 약간 시큰거린다.


  15시 정각, 유평에 도착하여 도로를 따라 대원사로 향한다. 내려가는 도중에 계곡에 내려가 땀에 밴 웃옷을 벗어 물에 담가 훌훌 털어 그대로 입으니 계곡의 시원함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대원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도 계속해서 걷는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도 이제 몸에 배어 그런 대로 걸을 만하다. 걸어오면서 지나치는 차들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매표소에서부터 아예 차를 위로 올려 보내지 않으면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너무나 많은 차량들이 계곡을 찾아들어 자연을 마구 훼손하거나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등 자연을 멍들게 하고 있다. 따라서 입구에서 차를 두고 걸어서 대원사나 그 위에까지 올라가 자연을 즐기고 쉬었다 가는 식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유평이나 새재 등의 주민은 차량출입증을 교부하여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택시를 제외한 외지인의 차량은 일체 출입을 막는 것이다. 아무튼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관계없겠지만 차량으로 놀러 온 사람들의 차량 출입은 막아야 한다고 본다.


  대원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2.2㎞, 중산리~천왕봉 5.4㎞, 천왕봉~대원사 11.7㎞, 이렇게 해서 오늘  19.3㎞를 7시간 넘게 걸려 걸은 셈이다. 당초 계획대로 황금능선을 종주하는 숙제를 끝내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지만 나 혼자만의 산행으로 자신을 뒤돌아보며 많은 것을 깨우치게 했고 자성도 해봤다. 과분한 욕심을 버리고 그저 보통의 삶으로 자신에게 만족하며, 남과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행복이 아닌가 싶다.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석산, 거망산  (0) 2006.08.04
바래봉, 덕두봉  (0) 2006.08.04
지리산 겨울  (0) 2006.08.04
적석산  (0) 2006.08.04
월출산  (0) 200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