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 단상(短想)

백동2층장과 벽오동2층장

영봉 2010. 7. 23. 22:39

2010. 7. 23.

이른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 고향집으로 향했다.

불과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지만 별로 하는 일 없이 자주 들리기가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는 자주 찾아뵈러 들렸지만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자주 들리질 못 하고 가끔 이곳을 찾는다.


열흘 만에 집을 찾아가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자물쇠를 채워둔 방문이란 방문은 모두 잠금 장치가 빠져있고, 방문을 열어보니 백동2층장 벽오동2층장이 사라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 옷가지가 온 방에 널려있다. 며칠 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만약에 사람이 있었더라면 다치지나 않았을까하고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온기가 스며있던 유품이 없어진 터라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세월에 때가 묻어있는 농짝이지만 낡은 농짝이라 이런 걸 누가 손대랴싶어 그대로 방에 넣어두고 방문을 열 때마다 부모님의 손길을 느끼고 했었는데 너무나 당황하여 한 동안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알고 보니 대문을 열 수 없어 장독대 옆 담-담도 허물어져 허술하지만-나름대로 울타리를 만들었었는데 그곳으로 월장을 하여 훔쳐간 것이다. 아쉬움에 담장너머로 가봤더니 발자국만 선명한데 밭에 심어져 있는 곡식은 하나도 넘어진 것이 없는 걸로 보아 우리 집 사정을 환히 알고 있는 사람의 소행이 분명했다. 예전에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거짓말로 나이 많은 노인네를 속여, 대문에 붙여있는 거북모양의 조각품 하며 일정시대 만들어진 소주 두루미를 헐값에 가져간 골동품상인 같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의심스럽다.

백동2층장은 어머님 살아 계실 때 백동을 모두 뽑아 광택을 내어 더욱 빛이 반짝이게 보수해놓은 터라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나마 가져가면 받침대도 마저 가져가지 왜 받침대는 안 가져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촛대 생각이 난다. 가져가려면 마저 가져가야지 마저 가져갔으면 더 좋은 값을 받을 텐데.


이런 내막도 모르고 그저 옛날 골동품들을 비싼 값으로 사서 거실에 장식을 해놓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나와 같이 억울한 일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이 가져가서 겨우 돈 몇 백만 원에 한 건 하는지는 몰라도 내게는 몇 십 배 아니 몇 백 배가 되는 값으로 아니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인데 이걸 훔쳐간 사람들은 진정 거기에 담긴 의미와 값어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양심은 무슨 양심이겠느냐마는 손톱만큼이라도 양심이 있으면 제자리에 돌려줬으면 한다. 잘잘못은 묻지 않겠다. 설마 제자리에 돌아올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이게 삶의 전부는 아니니까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하여 뉘우치고 반성한다면 충분히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한다. 돈 몇 푼에 자기 인생을 걸만큼 이런 유치한 행동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잘못이 밝혀지는 날 큰 벌을 받기 이전에 스스로 깨우쳐 큰 과오를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조상님과 신의 저주가 곧 내려질 것이야!

하긴 이런 물건을 사는 사람도 그렇지 누가 제 집에 대대로 가보처럼 내려오는 유품을 파는 사람이 있으리오. 물론 생계 때문에 그런 불충을 저지를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나 같은 경우의 도난품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거래가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이런 세상을 원망해야하나요?

사진을 취미로 프로에 입문하여 생활하고 있는 터라 언젠가 사진을 찍어 기록을 보관해 두었으니 누군가 이걸 소장하고 있으면 양심에 꺼려 편할 날이 없을 거외다.


너무도 슬프네요. 나의 부모님에 대한 사람과 추억을 깡그리 무시당하다보니 너무 슬퍼서 잠을 못 이루고 애통해서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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