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
간밤에 비가 계속해서 내리더니 날이 밝으니 구름이 잔뜩 끼었어도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이런 날씨가 여름 산행하기엔 참 좋은 날씨다. 7시 조금 넘어 출발한 버스는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을 뿐인데 거의 4시간 가까이 걸려 문경 주흘산 입구에 도착한다.
안개가 자욱하게 산허리를 감싸고 있어 주흘산의 준봉은 보이지 않아 얼마만한 거리에 얼마만한 높이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제일관문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여공폭포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기로 하여 길을 따라 오르는데 계곡을 따라 오르다 문득 능선으로 오르고 싶은 욕심에 일행을 떠나 혼자 능선을 차고 오른다. 앞서 간 사람들의 무리가 많았는지 잘 안 다니는 등산로인데도 지나간 발자국이 많이 보인다. 활엽수 낙엽이 차곡차곡 쌓인 산길이라 발아래 와 닿는 포근한 감촉이 참 좋다.
첫 번째 만나는 재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곧장 길을 재촉하다. 능선에 올라서도 안개에 가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정상이 얼마나 가야 오를 수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쨌거나 점심을 먹을 때까지는 일행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들지만 부지런히 걸었다. 때로는 빗물에 젖어있는 높은 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아슬아슬한 절벽을 내려다보면서 오르는데 잠깐 안개가 비껴나 바라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천길, 아니 이백길 낭떠러지 밑을 바라보고는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
정상을 향해 몇 봉우리를 오르내린 연후에 앞서가는 산악회-서울 하나산악회-회원들을 모두 추월하여
능선을 따라 오른다. 오후 한시가 넘어서도 아직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안개 때문에 주위를 분간할 수 없어 조바심을 태우는 가운데 13시 24분, 드디어 여공폭포로 오르는 등산로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오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우리 일행은 전부 다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13시 35분 주흘산(1,075m) 정상에 올랐다. 앞서 올라온 직원들은 점심을 먹느라 바쁘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점심을 꺼내 먹는다. 빈속에 성규가 건네주는 곰국 두 컵을 먹고는 밥이 제대로 먹히지 않아 그냥 짐을 꾸린다. 일행 4명과 함께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주흘영봉(1,106m)으로 향했다. 주흘영봉으로 가는 도중 가는 비를 만나 배난 커버를 씌우고 뒤따라갔는데 앞서가는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 바로 아래 이정표에는 제2관문 3.8㎞, 주흘산 1.3㎞, 제3관문 6.7로 표기되어 있는데 정상에 올랐다가 제2관문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정상에 올랐는데 표지석도 없고 먼저 내려간 일행도 보이지 않는다. 행여 다른 길로 갔나싶어 능선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급경사 내리막길이라 되돌아 올라와 당초 제2관문 쪽으로 하산했다. 앞서가는 일행을 만나려고 서둘러 내려갔지만 이날 버스로 돌아오기까지 끝내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잘못 가려고 한 길로 잘못 내려가는 탓에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맨 나중에 나타난 것이다. 급한 비탈길을 내려오다 14시 55분, 계곡을 만나 땀을 씻고있는데 당초 정해진 코스-주흘산에서 제2관문-로 하산하는 일행을 만났다. 계곡을 건너 임도를 따라 걷는데 꼬불꼬불 돌고 돌아 끝이 없다. 계곡을 몇 차례나 건너서 15시 30분, 마지막 계곡을 건너서부터는 길에 마사를 깐 도로라 걷기가 훨씬 편했다. 제2관문을 조금 내려서니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조곡폭포가 나타난다. 잠시 쉬면서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보슬비를 맞으며 조령원터를 구경하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옛날 과거를 보러 문경새재를 넘나들던 옛과거길을 걸어보면서 옛시절을 떠올려본다.
16시 8분, KBS의 왕건 촬영장을 돌아보고 제1관문을 나와 무인시대 촬영장을 돌아보았는데 직접 보는 현장과 텔레비전으로 보는 영상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느꼈다. 영상매체가 사람을 현혹시키는구나 하고. 내려오는 길에 박물관도 둘러보고-별 볼 것은 없었지만-주차장에 도착-16시 52분-하여 시원한 맥주로 오늘의 피로를 말끔히 씻었다.